첫째 날: 화성의 정취에 빠지다
드디어 오래 계획했던 수원 여행을 시작했다. 서울에서 기차로 40분 거리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일상에서 완전히 벗어난 느낌이다. 아침 일찍 수원역에 도착하자마자 화성으로 향했다. 역에서 13번 버스를 타고 15분 정도 달려 화성행궁에 도착했다.
먼저 수원화성박물관에 들러 화성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기로 했다.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를 기리며 만든 성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니 더 특별하게 느껴졌다. 박물관 내부에는 화성을 축조한 과정을 상세하게 보여주는 모형과 영상이 있어서 나중에 성곽을 직접 볼 때 더 이해하기 쉬웠다. 특히 정조가 직접 화성 축조를 지시하면서 만든 '화성성역의궤'를 본떠 만든 전시물이 인상적이었다.
박물관을 둘러본 후 화성행궁으로 향했다. 행궁은 임금이 지방에 갈 때 머무는 임시 궁궐인데, 수원 화성행궁은 특히 규모가 크고 웅장했다. 봄날 화창한 날씨 덕분에 파란 하늘 아래 펼쳐진 붉은 단청과 기와의 조화가 정말 아름다웠다. 행궁 내부를 둘러보고 나서는 화성 성곽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성곽길은 생각보다 길었지만, 중간중간 멋진 전망대와 정자가 있어 쉬어가기 좋았다. 특히 방화수류정에서 바라본 풍경은 정말 압권이었다. 연못 위에 지어진 정자와 주변 경관이 한 폭의 동양화처럼 펼쳐졌다. 날씨가 좋아서인지 현지인들도 많이 보였고, 외국인 관광객들도 꽤 있었다. 화서문을 지나 팔달문까지 걷다 보니 어느새 배가 고파졌다.
점심은 지역 사람들에게 물어봐서 유명 갈빗집을 찾아갔다. 이곳은 40년 전통의 수원 갈비 맛집이라고 한다. 두툼한 갈비를 숯불에 구워주는데, 양념이 너무 달지 않으면서도 고기의 맛을 살려주는 게 특징이었다. 고기를 싸 먹는 상추와 쌈장도 신선했고, 된장찌개도 깊은 맛이 났다..
점심 후에는 영동시장으로 향했다. 전통시장 구경도 하고 디저트도 먹고 싶었다. 시장에는 다양한 먹거리와 살 거리가 있었는데, 특히 통닭거리에서 파는 양념통닭의 유혹을 뿌리치기 어려웠다. 결국 '미스터 통닭'에서 반마리를 테이크아웃해서 시장 구경하면서 먹었다. 바삭한 겉면과 매콤 달콤한 양념이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었다.
첫날 숙소는 화성 근처의 '호텔 아르떼'로 잡았다. 화성행궁에서 도보로 10분 거리라 위치가 좋았고, 객실도 깔끔했다. 무엇보다 창문으로 화성의 일부가 보이는 방이라 특별한 느낌이 들었다. 하루 10만 원 정도로 가성비도 괜찮았다. 첫날부터 걷느라 피곤했지만, 창가에서 야경을 바라보며 마시는 맥주 한 잔의 여유가 정말 좋았다.
둘째 날: 광교의 자연과 현대적 감성
둘째 날은 좀 더 여유롭게 시작했다. 호텔 조식을 먹고 오전 10시쯤 광교산으로 향했다. 유명한 등산 코스라고 해서 걱정했는데, 초보자 코스도 잘 되어 있어서 부담 없이 산책하듯 올랐다. 숲이 울창해서 도심에 있다는 것을 잊게 만들었다. 약 1시간 반 정도 가볍게 등산한 후, 광교호수공원으로 내려왔다.
광교호수공원은 정말 넓었다. 인공 호수를 중심으로 잘 조성된 산책로를 따라 걸으니 마음이 평온해졌다. 특히 호수 중간에 있는 스카이워크에 올라가 보니 호수와 주변 경관이 한눈에 들어왔다. 날씨가 좋아서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거나 피크닉을 즐기고 있었다. 나도 호숫가 벤치에 앉아 잠시 책을 읽으며 여유를 즐겼다.
점심때가 되어 광교 카페거리로 향했다. 이곳은 신도시답게 모던한 건물들 사이에 다양한 레스토랑과 카페가 있었다. 여러 곳을 둘러보다가 '아브뉴프랑'이라는 곳에서 브런치와 커피를 즐겼다. 에그 베네딕트와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는데, 분위기도 좋고 맛도 괜찮았다. 특히 테라스 자리에 앉아서 먹는 브런치는 여행 기분을 한껏 높여주었다.
오후에는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을 방문했다. 생각보다 규모가 크진 않았지만, 현대 미술 전시가 잘 되어 있었다. 특히 지역 작가들의 작품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미술관 관람 후에는 다시 광교중앙공원으로 돌아와 저녁 무렵까지 여유롭게 시간을 보냈다. 해가 저물어가는 호수의 모습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저녁은 카페거리에 있는 '비스트로 광교'라는 와인 바에서 해결했다. 파스타와 스테이크, 그리고 와인 한 잔을 주문했다. 음식의 맛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통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광교의 야경이 인상적이었다. 혼자 여행 중이라 조금 외로울 법도 했는데, 오히려 나만의 시간을 즐길 수 있어서 좋았다. 식사 후에는 호수 주변을 한 바퀴 산책하며 야경을 감상했다.
둘째 날 숙소는 '코트야드 메리어트 수원'으로 정했다. 첫날보다는 예산을 많이 썼지만, 광교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전망의 방이라 특별한 경험이었다. 객실에 있는 욕조에서 야경을 바라보며 목욕하는 호사를 누렸다. 하루 25만 원 정도로 비싼 편이었지만, 여행 중 하루쯤은 이런 호텔에서 묵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셋째 날: 현대와 전통의 조화, 마지막 일정
마지막 날은 체크아웃 후 짐을 호텔 프런트에 맡기고 수원월드컵경기장으로 향했다. 평소 축구를 좋아해서 꼭 방문하고 싶었던 곳이다. 경기장 투어 프로그램이 있어서 신청했더니, 실제 선수들이 이용하는 라커룸과 필드 사이드까지 구경할 수 있었다. 2002년 월드컵의 흥분이 아직도 남아있는 듯한 경기장의 분위기가 좋았다.
월드컵경기장 방문을 마치고 수원에서 좀 떨어진 한국민속촌으로 향했다. 용인에 있는 민속촌은 시내버스로 약 40분 거리였다. 조선시대 마을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이곳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온 듯한 느낌이었다. 전통 가옥과 생활 방식을 직접 볼 수 있어서 좋았고, 특히 전통 공연이 인상적이었다. 마상무예 공연은 말을 타고 하는 다양한 무술 기술을 보여주는데, 아찔하면서도 멋있었다. 민속촌 내에 있는 전통 주막에서 파전과 동동주를 즐기며 점심을 해결했다.
민속촌 관람을 마치고 다시 수원으로 돌아와 마지막으로 남문시장(팔달문시장)을 방문했다. 이곳에서는 다양한 기념품과 먹거리를 구경했다. 특히 '지동시장'에 있는 칼국수집에서 먹은 수제비는 쫄깃한 면발과 시원한 국물이 일품이었다. 시장에서 수원 약과와 부모님께 드릴 선물도 몇 가지 구입했다.
마지막 저녁은 수원역 근처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배부장찌개'라는 작은 밥집에서 김치찌개를 주문했다. 깊은 맛의 김치찌개와 정갈한 반찬들이 3일간의 여행을 마무리하기에 딱 좋았다.
식사 후에는 수원역 인근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여행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2박 3일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화성의 역사와 광교의 자연, 그리고 수원의 맛까지 다양하게 경험할 수 있어서 정말 만족스러웠다.
여행을 마무리하며 몇 가지 팁을 정리해 보았다:
- 수원은 대중교통이 잘 되어 있어서 렌터카 없이도 충분히 여행 가능하다. 특히 화성 주변은 도보로 이동하기 좋다.
- 화성 성곽을 모두 걷기엔 꽤 길기 때문에, 시간이 부족하다면 화성열차나 투어버스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 수원의 맛집은 예약이 필요한 경우가 많으니, 유명한 갈빗집은 미리 예약하는 것이 좋다.
- 광교 지역은 새로운 도시라 깔끔하고 현대적인 느낌을 주는 반면, 화성 주변은 역사적인 분위기가 강하다. 이 두 가지 매력을 모두 경험해 보길 추천한다.
- 화성은 밤에 야경도 아름다우니, 저녁에 방화수류정이나 팔달문 주변을 산책해 보는 것도 좋다.
서울에서 가까운 거리에 이렇게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도시가 있어서 좋았다. 다음에는 친구들과 함께 와서 더 많은 곳을 탐방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수원 화성문화제가 열리는 가을에 다시 방문해보고 싶다. 기차에 오르며 수원에서의 추억을 마음에 담았다.